타이틀 | 120엔의 봄 |
제작사 | 인터채널 |
장르 | 하트 풀 미니 노벨 |
발매일 | 2005.02.24 |
■소갯말
'120엔의 봄'은 지금은 폐사된 네코네코 소프트의 작품으로써, 네코네코 소프트의 팬디스크등에 들어 있는 단편 시나리오 '120엔의 겨울', '120엔의 여름'을 한데 묶어 ps2로 이식한 작품이다.
물론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너무나도 시나리오의 볼륨이 적기에 기존의 2편에 '120엔의 가을', '120엔의 봄'등 2편의 단편 시나리오를 더 추가하여서 콘솔로 이식 되었다.
(발매는 인터채널, 제작은 네코네코 소프트)
120엔의 겨울을 비롯한 120엔 시리즈들은 각 캐릭터의 숨은 설정이나 배경등이 팬디스크를 통해서만 조금씩 밝혀졌던 작품인 만큼, 네코네코 소프트의 열광적인 팬들에게는 빼놓을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네코네코 팬디스크2에 수록된 120엔의 겨울과
무려 무료 배포(?!)된 오카에시CD5에 수록된 120엔의 여름
각 시나리오는 매우 짧아서 천천히 플레이해도 편당 3시간이면 충분히 완독할수 있을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이 짧은 시나리오의 길이로 인해 작품 자체에 '아마추어의 실험작'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게임 구성은 풍부한 cg를 바탕으로 풀음성에 보컬로 된 엔딩송까지 갖추고 있는 등. 상업용 게임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퀼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확실히 이 작품은 실험작이긴하다. 그러나 '아마추어의 실험작'이 아닌, 정진정명한 '프로의 실험작'인 것이다.
■120엔으로 할수 있는 것
타이틀에서 전면적으로 나타내고 있듯이 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바로 120엔이다.
일본의 화폐라서 잘 감이 안오는 분이 있다면, 한국 돈으로 딱 1000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20엔, 즉 천원으로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지하철 최단거리 승차권이 될수가 있겠고, 주간지의 가격이 될수도 있겠다.
그뿐인가 간단하게 군것질을 할수 있는 가격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작은 온기를 가져다주는 캔커피의 가격이기도 하다.
어떻게보면 정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액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다양하고 커다란 것을 이룰수 있는 액수 120엔
120엔으로 이룰수 있는 꿈의 이야기
120엔에서부터 시작되는 인연의 이야기
이 작품에서 말하는 '120엔'이란 바로 그런 의미다.
■4가지의 짧은 단편. 짧다는 점이 이 작품의 최고 장점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4편의 단편이야기라는 점
이건 지금까지의 미소녀 게임이라면 상상도 못할 구조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의 미소녀 게임이란 텍스트가 길면 길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짧으면 짧을 수록 안좋은 평가가 쏟아지는데 하물며 단편집이라니?
내용을 늘리기 위해 쓸데 없는 묘사들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수많은 미소녀 게임에 비하면, 이 작품의 '단편집'이라는 시도는 굉장히 신선하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일단 단편에서 주는 장점부터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플레이 시간이 짧다. 편당 길면 3시간이고, 짧다 싶은건 2시간 안에 완독도 가능하다.
자, 여기서 한단계 더 들어가서 일반 미소녀 게임의 플레이 타임에 대해 이야기해자.
미소녀 게임은 보통 한명을 클리어하려면 5시간은 기본이고, 좀 길다 싶으면 10시간이 넘어가는 작품도 있다.
일부 시나리오가 길기로 유명한 작품들은 시나리오 하나당 20~30시간은 우습게 잡아먹기도 하니, 미소녀 게임의 그 엄청난 텍스트의 양이란 굳이 자세히 말 안해도 알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나긴 텍스트가 마냥 좋은 것만은 절대 아니다.
이 바쁜 세상에 휴대도 할수 없는 콘솔/PC에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몇시간이고 미소녀 게임을 즐길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이라면 휴대를 하면서 짬짬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미소녀 게임은 가정이 아니면 즐길 수가 없다.
게다가 미소녀 게임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소설'이라는 특성이 강한지라, 언제 어느 때 잡아도 재미를 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임이라면 순간 순간적으로 주는 직관적인 재미가 있으니까 조금해도 재밌고, 오랜만에 잡아도 재밌게 할수 있다.
하지만 미소녀 게임은 그렇지 않다. 미소녀 게임의 플레이란 글을 읽으면서 감정을 담는 행위인지라, 30분 ~ 1시간만 해서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기 힘들고,
(30분~1시간이면 감정이 이제 막 달아 오르려고 하는 순간에 게임을 끝내야하거나, 감정이 달아 오르지도 못할 시간이다. 그렇게 감정 이입이 빠진 상태로 하는 미소녀 게임은 그저 수준 낮은 소설일 뿐이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잡으려고 해도 전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플레이조차 불가능하다.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플레이 해야 하는데, 짬나는 시간에 조금씩 해서는 진정한 재미를 느낄수 없다]고 하는 이 치명적인 단점
열광적인 미소녀 게임 유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미소녀 게임을 떠나게 되는 것은 꼭 미소녀 게임에 흥미를 잃어서는 아닐 것이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유 시간이 줄어드니 미소녀 게임을 즐기기 위한 그 까다로운 조건(매일 해야하고 감정이 고조 될 때까지 해야한다)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명이 길었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이 짧은 단편집이 주는 장점에 다들 눈치 챘으리라고 생각 된다.
그렇다. 길면 3시간 짧으면 2시간이면 끝나는 이 단편집은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소녀 게임의 치명적인 단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워낙 짧기 때문에 매일 할 것도 없이 한번에 완독하는 것도 가능하고, 정 시간이 부족하다면 2번에 걸쳐 나눠 읽어도 된다. (3번까지는 갈것도 없다)
시나리오 역시 너무나 당연하게도 짧은 길이에 맞춰서 기승전결이 나누어졌기 때문에, 보통 미소녀 게임과는 호흡부터 다르고 감정의 굴곡도 훨씬 빠르게 찾아온다.
바쁜 사회인이던 뭐던 게임기를 틀수 있는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끝낼수 있는 작품
2시간으로 즐기는 감정의 희노애락
2시간짜리 미소녀 게임의 매력이란 바로 이점이다.
하지만
......실컷 칭찬을 했지만, 이 게임은 그렇게 대단한 게임이 되질 못했다.
전부 합쳐서 10시간 남짓한 플레이 타임은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가격대 성능의 매리트가 떨어진다고 생각 될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 글의 수준이 뛰어나다면 충분히 수십시간에 맞먹는 가치를 느낄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게임'이면 몰라도, '미소녀 게임'에서 볼륨이 적다는 것만으로 천대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이 게임을 '대단한 게임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걸까?
이유는 의외로 너무나 간단하고 뻔하다.
말할 것도 없다.
컨셉이 아무리 좋아도 시나리오 자체가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미소녀 게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위에서 실컷 말했듯이 '단편집'이라는 이 게임의 컨셉은 매우 좋다.
그뿐만이 아니라 '120엔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라는 소재도 기대가 되는 양질의 소재라고 할수 있다.
작품의 테마 자체도 단순히 미소녀와의 쿵짝쿵짝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라던지,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그 미묘한 감정이라던지, 인연의 우연성이라던지 다루는 테마들이 '미소녀 게임'으로서 꽤 신선하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결국 '미소녀 게임'이라는 틀에 묶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떤 주제의 어떤 테마의 시나리오에서도 결국 남성 오타쿠의 취향에 적격인 멍청하고 이쁘장한 미소녀가 함께 나온다.
그리고 이 점이 작품의 모든 주제를 흐려놓고, 모든 테마를 흐려놓아버렸다.
왜 그런지 작품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자
다 볼수는 없으니 첫번째 시나리오이자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인 '120엔의 겨울'을 대표로 하겠다.
자신이 이룰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던 소년
어느날 단돈 120엔으로 기차를 타고 자신이 갈수 있는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한채 중간에 저지되고, 소년이 청년이 된 어느날
청년은 어릴적의 자신과 똑같은 꿈에 도전하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자, 중요한 것은 청년이 만난 것이 바로 '소녀'라는 점이다.
사실 소녀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소녀가 '멍청하고 연약한 성격이면서 남자에게 경계심이 없는 완전 미소녀의 방법론으로 짜여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끝까지 가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납득할수 있다.
하지만 저런 미소녀 모에 기호로만 만들어진 캐릭터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납득할수가 없다.
최소한의 리얼함마저 가지고 있지 않은 골빈 미소녀 캐릭터가 자신의 꿈을 이어가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납득할수 있는가?
적어도 필자는 아니였다. 주인공의 꿈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던 만큼 더더욱 아니였다.
게다가 이 단편에서 중요한 것은 꿈과 꿈을 이어가는 자의 이야기일텐데, 갑자기 이루어지는 청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
그렇다.
이 게임은 미소녀 게임이었다.
미소녀 게임에서 미소녀와의 연애는 빼놓을수 없다.
하지만 이 단편에서 연애 요소는 쓸데 없는 사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미소녀 게임이기에 미소녀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나오고
미소녀 게임이기에 미소녀와의 연애 요소가 반드시 나온다.
꽤 뛰어난 수준의 단편 소설이 될수 있음에도 미소녀 게임적 요소가 어줍잖게 들어가서 엉망이 된 이야기.
멍청한 미소녀 캐릭터는 인격을 가진 인간이었어야하고, 연애 요소는 제거 되었어야 하며, 사족 덩어리인 에필로그 같은건 완전 삭제했어야 한다.
미소녀 게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나리오들이었다. (주1)
여기서 조금 더 이야기를 붙히자면
첫번째 이야기인 120엔의 겨울을 제외한 다른 이야기들은 언급할 수준에도 다다르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그나마 120엔의 겨울이 가장 좋음)
다른 이야기들도 120엔의 겨울과 마찬가지로 테마는 괜찮았지만, 단점 역시 120엔의 겨울과 같다.
미숙한 캐릭터 조형과 미소녀 게임이기에 나올수 밖에 없는 강제적인 연애 요소로 모든 것을 망쳐놓은 이야기들뿐이라는 것이다.(주1)물론 미소녀 게임이기에 뛰어나게 완성될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평범한 단편 소설을 억지로 미소녀 게임으로 만들려는 바람에 이 모양 이꼴이 되고 말았다.
이 점은 분명히 미소녀 게임적 설정(멍청한 미소녀,연애요소)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 시나리오를 쓴 시나리오라이터의 실수이다.
솔직히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120엔의 봄'은 정말 아까운 작품이다.
캐릭터도 괜찮고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테마도 괜찮았다.
마무리만 좀 더 다듬었어도 이 작품의 탑은 '120엔의 겨울'이 아니라, '120엔의 봄'이었을텐데...
마지막 고민의 해결을 대충 흐지부지 넘어간게 패배 원인
네가지 이야기중 가장 떨어지는 것은 '120엔의 가을'
이건 존재 자체가 산업 폐기물에 가깝다.
■마치며
단편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 이 평은 이 작품이 미소녀 게임이기 때문에 생긴 장점이다.
미소녀 게임이라는 틀에 얽매여 나빠진 시나리오. 이 평은 이 작품이 미소녀 게임이기 때문에 생긴 단점이다.
미소녀 게임이기 때문에 생긴 장점과 미소녀 게임이기 때문에 생긴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작품.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미소녀 게임이 줄수 있는 매력과 단편 소설이 줄수 있는 매력
이 두가지가 엇갈려버린 작품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가능성은 볼수 있었다.
그것은 단편 노벨 게임이라는 신 영역과 미소녀가 없어도 성립이 가능 할 수 있는 영상 소설의 진정한 미래이다. (몇번이고 말했지만 이 작품에서 미소녀라는 요소는 오히려 사족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이 계속 나오는 이상, 언젠가는 미소녀 게임이 줄수 있는 매력과 단편 소설이 줄수 있는 매력을 동시에 줄수 있는 작품이 나오게 될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굳이 미소녀 게임이 아니더라도, 영상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뛰어난 소설들이 나올수 있는 시장이 언젠가는 형성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단편들은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 이 작품의 최대의 의의는 영상 소설의 성장 가능성의 재확인 바로 그게 아니였을까